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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어하게/책

릴리안의 알약 독일소설 후기

by 영하고 독하게 2020. 4. 17.

작가 : Steffi von Wolff [슈테피 폰 볼프]

번역가 : 이수영

출판사 : 한스미디어

 

현대 사회에서 피임이란? 부끄러운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묘사된 과거 시대에서 피임은 당연하지 않은, 오히려 남편에게 피떡이 되도록 맞을 일이다. 읽으면서 어찌나 아찔하던지... 분노로 인해서 가뜩이나 넓은 콧구멍이 더 넓어졌다.

피임 방법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손쉬운 방법으로는 콘돔과 피임약이 있다. <릴리안의 알약>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두 가지 방법 중에서 후자를 소재로 활용한 코미디 소설이다.

피임이라는 개념만 놓고 보면 도저히 "코미디"스럽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피임약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은 도구일 뿐,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하드캐리한다. 즉, 피임약을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길에 오른 인물들에게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여자 주인공 릴리안과 그 주변에 여자, 남자 인물들의 매력이 어마 무시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여성 인물은 발레리아이다. 시대가 과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성욕을 숨기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그 시대 여성의 덕목(?)이지만 발레리아는 아주 대범하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거칠 것이 없는 발랄한 존재이다. 원활한 성욕 해소를 위한 자신만의 기구를 손수 만드는 것을 보면 말 다했다 ㅋㅋㅋ 뭘 해도 될 사람. 그 외 인물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마틴 루터, 로빈 훗, 보티첼리, 미켈란 젤로, 앤 불린, 헨리 8세 등등... 어떤가? 익숙한 이름이지 않은가? 역사 속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실존 인물들(로빈 훗의 경우 제외)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 읽는 내내 신기했다. 이 모든 인물들이 "한 데" 모이는 배(ship)에서의 장면은, 마치 육지의 왕, 스테이크와 바다의 왕, 랍스터가 "한 그릇"에 있는 요리처럼 매력적으로 보였다. 한가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쓸 생각을 하다니... 천잰데?!

인물들의 이름에서 역사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대 배경을 묘사한 장면들(마녀사냥, 노예)에서도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실제 역사와 허구의 내용이 섞어있어서 읽으면서 아주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장면 중에, 릴리안과 체칠리에가 피임약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야생 마의 뿌리와 말의 오줌을 끓이는...? 아무튼 그런 식으로 만들길래 당연히 내용 전개를 위해 넣은 허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 뿌리에는 디오스게닌이라는 성분이 있고 이것은 피임약에 사용되는 성호르몬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암말의 오줌에는 에스트로겐이 함유되어 있어서 갱년기 여성의 치료제로도 사용되고 변형된 형태로 피임약의 구성 성분이 된다고 한다.

독일은 실제 최초의 피임약 "Anovlar(아나보라)"가 1961년에 시판되었다고 하니, 굉장히 앞선 피임약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세기의 발명이다.

보통 독일 드라마나 영화 책 등등 대중매체가 No잼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이 많아서 나 역시 이 책을 빌릴까 말까, 대출 버튼을 누를까 말까 손가락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생각 외로 Yes잼이었다. 2007년에 나온 책이지만 구시대적인 느낌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피임약이라는 소재가 신선했고 웃음을 주는 인물들 덕에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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