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유리병을 던졌다.
진짜 던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산산조각 난 병이 보였다. 엄마와 할머니는 마지막 남은 유리병을 가지고 실랑이를 했다. 내가 그 유리병을 뺏어서 할머니 방에 처박아두었다. 제발... 유리병이 없어지면 또다시 엄마를 도둑으로 몰지 않길 바라면서.
오늘은 생각해보면 유독 둘의 싸움이 심했다. 병을 던졌으니 말 다한 거지 뭐. 병을 던지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었다. 근데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병을 던졌을까. 할머니와 1차전이 끝난 후 나와 빨래를 널며 "근데... 병 던지니까 시원하다. 스트레스가 싹 풀리네."라고 말하던 엄마. 같이 웃으면서도 엄마가 불쌍했다.
할머니와 같이 산 지가... 내가 초등학생 때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왔으니 거의 내 24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살고 있다. 그때, 할머니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내가 실수로 깼던 오렌지 주스 유리병이 생각난다. 오늘 깨진 것도 유리병. 엄마 역시 할머니를 모신 지 12년이 넘었고, 언제부턴지 모르게 할머니는 엄마를 도둑년이라고 했다. 내가 대학생이 되던 즈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이유는 치매 때문이었다.
내 가정이 맞다면 4-5년간 엄마는 도둑년으로 몰렸던 것이다. 4-5년간 받은 스트레스를 오늘 깬 유리병으로 푼 셈이다. 이게 맞다면 내 기준에서 엄마는 잘한 것이다. 4년 치 스트레스가 유리병 1개로 해소된다면 소박하게 잘 푼 것이지! 근데 고모들은 엄마가 잘못했다고 할머니한테 사과하라고 한다. 그래. 그럼 서로 잘못했으니 할머니도 사과를 해야지? 근데 안 봐도 비디오. 엄마만 늘 죄송한 사람.
오늘도 이렇게 아빠가 미워지는 날이다. 아빠는 자기 엄마인데 뭘 어떻게 못 하나? 4-5년간 방관자인 아빠. 1번 방관자이다. 그리고 나도 역시 딱히 뭘 한게 없으니 2번 방관자. 쟁은 한번 도둑년으로 몰려봤으니 3번 방관자이자 2번 피해자. 엄마는 1번 피해자. 아! 아니다. 오늘 난 이렇게 글도 쓰고 엄마와 할머니의 대화를 녹음했으니 방관자는 아닌 걸까?
내가 빨리 잘 되어서 우리 엄마 호강시켜줘야 하는데 나는 맨날 입만 살았다. 나쁜 년. 우리 엄마는 밖에서 할머니 저녁상을 차리는 중이다. 부스럭부스럭 투닥,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보살인 것 같다.
유명 아이돌 가수가 우울증을 못 이겨서 자살을 했다. 설마 우리 엄마도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까 봐 무서웠다. 내가 걱정하니까 엄마가 죽긴 왜 죽냐고 걱정 말라고 하지만... 걱정된다. 곧 학원이 개강하면 엄마 곁에 있어줄 사람이 없는데. 내가 빨리 1년간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엄마 곁으로 돌아와야지.
쟁이 오면 오늘 유리병 사건을 말해줘야겠다!
☆출처★
2017년 12월 21일 저녁에 썼던 나의 일기. 2년이 넘어 발견해서 감회가 새롭다. 일기가 낡을까 봐 낡지 않는 블로그에 옮겨 둔다.
검은색 이미지는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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